망명자의 공유지
이연숙(리타), 미술비평
작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송신규 작가의 작업을 처음 실물로 봤던 때가 생각난다. <볼 수 없는 것>(2023)이라는 제목으로, 강릉에 위치한 동부시장에서 발견된 일상적인 사물들의 형태를 종이죽으로 평평하게 본을 뜨고 말린 다음, 이를 캔버스 삼아 아크릴로 점을 찍듯 촘촘하게 색을 먹여 완성된 수십 개의 오브제를 마치 빨래 널듯 사다리꼴 구조물 사이에 걸어 둔 설치 작업이었다. 아마도 수백 번 작가의 눈과 손이 닿았을 작품에 누적된 시간을 가늠하며 나는 그 밀도에 새삼스레 놀랐다. 마치 시간의 단면을 얇게 저며 바짝 말려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종이죽으로 만들어져 물에 닿으면 형태가 어그러질 그 연약한 오브제들은 동부시장에 놓여 있었을 사물들로부터 기원한 것일 테지만 원본들의 개별적인 차이를 재현하는 데에 자신의 존재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곧 치워질 사물들의 표면에 내려앉은 상실의 예감을 가장 수고스러운 방식으로 미리 애도하기 위해 거기에 걸려 있었다. 과거를 증거하는 화석으로서도, 기억을 역사로 승인하는 기념비로서도 아닌, 그저 잠시 미술관의 허공에 잠시 놓였다 사라지기를 택하는 일시적인 퍼포먼스로서의 <볼 수 없는 것>은 한동안 내게 마치 눈에 낀 부유물 같은 잔상을 남겼다. 선명히 떠올리려 해도 당최 초점이 맞지 않는 과거의 기억처럼 말이다.
당시 송신규 작가가 준비 중이던 또 다른 단체전 《재난지역 033》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볼 수 없는 것>의 배경이 되는 1977년 개장한 동부시장은 전지역적인 전통시장의 쇠퇴와 함께 인적이 끊기고 시설이 낙후되어 꾸준히 재건축 논의가 거론되는 곳이다. 한때 삶의 터전이던 공간은 이제 선거철마다 공약에 내걸리는 상징으로 전락했다.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는 쇄신과 혁신을 거듭하며 최소한의 자원으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착즙하려는 욕망의 속력을 한 개인의 힘으로는 중단시킬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 반해 미약하게 저항할 수는 있다.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발 디딘 현실을 조건 삼아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실용적인 전략을 발명한다. 한편 예술가들은 ‘고작’ 목격하고 증언하고 기록하는 자로서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인식하며 과거로부터 길어 올려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작업이라는 특수한 미적 대상을 통해 선취한다. 물론 활동가와 예술가의 영역은 교집합을 가지지만, 예술가들은 보다 고집스럽게 자본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에 남기를 택한다. 이는 분명 우울증자의 취향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전위로 불릴 수 있다면 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현상에 걸맞은 미끈한 전진이 아니라 버려진 잔해를 향해 힘껏 뒤를 돌아보는 열정적 후퇴를 통해서다.
이러한 전위적 후퇴의 연장선상에서 잊힌, 잊힐 사물과 장소를 주로 그려온 송신규 작가는 마치 그들이 몰래 숨어 들어갈 껍질이라도 제공하듯 두텁고 거친 표면을 캔버스 위에 올린다. 요컨대 작년 합정지구에서 열린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에 걸린 그림들이 그랬다. 비교적 구작인 <흙, 땅, 집, 그리고 기억의 빈터〉(2021), <땅으로부터>(2021)와 같은 그림들의 긁고 파낸 표면의 흔적은 시간의 피부에 새겨진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결코 온전히 봉합될 수 없는 상처의 틈새를 양각화한다. 화면 속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이러한 틈새들은 전경과 배경의 구분을 흐리는 시각적 방해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낮은 해상도로 저장된 우리 자신의 난폭한 기억을 일깨우는 촉각적 촉매제로 기능한다. 기억에는 하강하는 성질이 있기에, 종종 나는 그의 작업이 작동시키는 중력 앞에서 침묵을 택하고 싶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내’ 기억에 관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송신규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돌아갈 곳 없는 집은 내게 빈터와도 같다”고, 그래서 “캔버스 위에서 나의 뿌리와 주거지를 찾는다”고 썼다. 아마도 그 “뿌리와 주거지”란 손쉬운 낭만화나 매혹적인 사물화로 고양될 수 없는, 흉터로 뒤덮인 껍질로 잠시 알몸을 숨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누추한 임시 대피소의 형태에 가까울 것 같다. 무엇보다 여기로는 그럴싸한 ‘집’을 가지지 못한 누구나가 드나들 수 있다. 자본의 힘에 휩쓸려 사라질 사물과 장소는 물론이고 “돌아갈 곳 없는 집”을 가졌기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만 돌아갈 곳을 지을 수 있는 작가, 그리고 그런 사라지는 것들과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무나’들까지도.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고향’을 잃은 망명자들의 침묵하는 공유지이기도 한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그의 “시골 출신”으로서의 자긍심은 일견 그를 ‘고향’이라는 상상적 개념에 정주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고향’을 잃었기에 ‘고향’을 캔버스 위에서 발견하고 발명해야 했던 작가의 망명자로서의 정체성을 못 본 체할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장 아메리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그가 말하려 한 것은 ‘고향’이라는 모성적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힌 이후에도 다른 장소들을 고향 ‘삼을’ 수 있는 회복적 능력의 가능성이다. 이를테면 《내일을 보는 오늘》에 전시된 그의 작업은 지난 몇 년간 대만, 원주, 순천, 양구와 같은 장소에서 머물며 그가 포착한 잊히고 방치된 사물들과 장소들에 대한 동일시의 기록을 마치 거미줄처럼 시각화한 설치다. 형식도 기법도 다종다양한 그의 지난 작업들은 작가로서의 일관된 자기표현(즉 ‘스타일’)을 주장하는 대신 각각의 사물들과 장소들 사이를 지도 그리며 역사라는 폭력 속 휩쓸려 사라진 비인간적 존재들의 공동체적 운명을 일깨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자기 전시와 자기 홍보라면 그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림, 설치, (때론)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언제나 타자적일 수밖에 없는 기억, 장소, 사물의 도구로 삼는다. 낯선 땅과 집,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인상과 느낌은 그의 온몸을 통과하며 캔버스 위 그의 ‘고향’을 짓는 재료가 되는 잔해를 남긴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천막들, 허물들, 껍질들. 거미줄을 칠 수 있다면 어디든 집으로 삼는 거미처럼,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그곳이 그의 고향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의 향수병을 너무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일까?
이연숙(리타), 미술비평
작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송신규 작가의 작업을 처음 실물로 봤던 때가 생각난다. <볼 수 없는 것>(2023)이라는 제목으로, 강릉에 위치한 동부시장에서 발견된 일상적인 사물들의 형태를 종이죽으로 평평하게 본을 뜨고 말린 다음, 이를 캔버스 삼아 아크릴로 점을 찍듯 촘촘하게 색을 먹여 완성된 수십 개의 오브제를 마치 빨래 널듯 사다리꼴 구조물 사이에 걸어 둔 설치 작업이었다. 아마도 수백 번 작가의 눈과 손이 닿았을 작품에 누적된 시간을 가늠하며 나는 그 밀도에 새삼스레 놀랐다. 마치 시간의 단면을 얇게 저며 바짝 말려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종이죽으로 만들어져 물에 닿으면 형태가 어그러질 그 연약한 오브제들은 동부시장에 놓여 있었을 사물들로부터 기원한 것일 테지만 원본들의 개별적인 차이를 재현하는 데에 자신의 존재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곧 치워질 사물들의 표면에 내려앉은 상실의 예감을 가장 수고스러운 방식으로 미리 애도하기 위해 거기에 걸려 있었다. 과거를 증거하는 화석으로서도, 기억을 역사로 승인하는 기념비로서도 아닌, 그저 잠시 미술관의 허공에 잠시 놓였다 사라지기를 택하는 일시적인 퍼포먼스로서의 <볼 수 없는 것>은 한동안 내게 마치 눈에 낀 부유물 같은 잔상을 남겼다. 선명히 떠올리려 해도 당최 초점이 맞지 않는 과거의 기억처럼 말이다.
당시 송신규 작가가 준비 중이던 또 다른 단체전 《재난지역 033》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볼 수 없는 것>의 배경이 되는 1977년 개장한 동부시장은 전지역적인 전통시장의 쇠퇴와 함께 인적이 끊기고 시설이 낙후되어 꾸준히 재건축 논의가 거론되는 곳이다. 한때 삶의 터전이던 공간은 이제 선거철마다 공약에 내걸리는 상징으로 전락했다.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는 쇄신과 혁신을 거듭하며 최소한의 자원으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착즙하려는 욕망의 속력을 한 개인의 힘으로는 중단시킬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 반해 미약하게 저항할 수는 있다.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발 디딘 현실을 조건 삼아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실용적인 전략을 발명한다. 한편 예술가들은 ‘고작’ 목격하고 증언하고 기록하는 자로서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인식하며 과거로부터 길어 올려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작업이라는 특수한 미적 대상을 통해 선취한다. 물론 활동가와 예술가의 영역은 교집합을 가지지만, 예술가들은 보다 고집스럽게 자본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에 남기를 택한다. 이는 분명 우울증자의 취향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전위로 불릴 수 있다면 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현상에 걸맞은 미끈한 전진이 아니라 버려진 잔해를 향해 힘껏 뒤를 돌아보는 열정적 후퇴를 통해서다.
이러한 전위적 후퇴의 연장선상에서 잊힌, 잊힐 사물과 장소를 주로 그려온 송신규 작가는 마치 그들이 몰래 숨어 들어갈 껍질이라도 제공하듯 두텁고 거친 표면을 캔버스 위에 올린다. 요컨대 작년 합정지구에서 열린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에 걸린 그림들이 그랬다. 비교적 구작인 <흙, 땅, 집, 그리고 기억의 빈터〉(2021), <땅으로부터>(2021)와 같은 그림들의 긁고 파낸 표면의 흔적은 시간의 피부에 새겨진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결코 온전히 봉합될 수 없는 상처의 틈새를 양각화한다. 화면 속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이러한 틈새들은 전경과 배경의 구분을 흐리는 시각적 방해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낮은 해상도로 저장된 우리 자신의 난폭한 기억을 일깨우는 촉각적 촉매제로 기능한다. 기억에는 하강하는 성질이 있기에, 종종 나는 그의 작업이 작동시키는 중력 앞에서 침묵을 택하고 싶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내’ 기억에 관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송신규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돌아갈 곳 없는 집은 내게 빈터와도 같다”고, 그래서 “캔버스 위에서 나의 뿌리와 주거지를 찾는다”고 썼다. 아마도 그 “뿌리와 주거지”란 손쉬운 낭만화나 매혹적인 사물화로 고양될 수 없는, 흉터로 뒤덮인 껍질로 잠시 알몸을 숨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누추한 임시 대피소의 형태에 가까울 것 같다. 무엇보다 여기로는 그럴싸한 ‘집’을 가지지 못한 누구나가 드나들 수 있다. 자본의 힘에 휩쓸려 사라질 사물과 장소는 물론이고 “돌아갈 곳 없는 집”을 가졌기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만 돌아갈 곳을 지을 수 있는 작가, 그리고 그런 사라지는 것들과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무나’들까지도.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고향’을 잃은 망명자들의 침묵하는 공유지이기도 한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그의 “시골 출신”으로서의 자긍심은 일견 그를 ‘고향’이라는 상상적 개념에 정주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고향’을 잃었기에 ‘고향’을 캔버스 위에서 발견하고 발명해야 했던 작가의 망명자로서의 정체성을 못 본 체할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장 아메리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그가 말하려 한 것은 ‘고향’이라는 모성적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힌 이후에도 다른 장소들을 고향 ‘삼을’ 수 있는 회복적 능력의 가능성이다. 이를테면 《내일을 보는 오늘》에 전시된 그의 작업은 지난 몇 년간 대만, 원주, 순천, 양구와 같은 장소에서 머물며 그가 포착한 잊히고 방치된 사물들과 장소들에 대한 동일시의 기록을 마치 거미줄처럼 시각화한 설치다. 형식도 기법도 다종다양한 그의 지난 작업들은 작가로서의 일관된 자기표현(즉 ‘스타일’)을 주장하는 대신 각각의 사물들과 장소들 사이를 지도 그리며 역사라는 폭력 속 휩쓸려 사라진 비인간적 존재들의 공동체적 운명을 일깨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자기 전시와 자기 홍보라면 그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림, 설치, (때론)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언제나 타자적일 수밖에 없는 기억, 장소, 사물의 도구로 삼는다. 낯선 땅과 집,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인상과 느낌은 그의 온몸을 통과하며 캔버스 위 그의 ‘고향’을 짓는 재료가 되는 잔해를 남긴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천막들, 허물들, 껍질들. 거미줄을 칠 수 있다면 어디든 집으로 삼는 거미처럼,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그곳이 그의 고향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의 향수병을 너무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