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50호 마을 우리가 겪는 재난이 있다. 자연에서 오는 것과 사회 현상에서 오는 것들.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소리와 전달되는 문자들은 마치 하나의 현상으로 다가온다. 중심지역(수도권)에서의 재난은 공통된 현상으로서 전 지역으로 확산하며 타지역(지방) 안으로 전달된 재난은 각자가 느끼는 개인적 재난으로 체감된다. 이러한 현상을 예술 속에 찾아보고자 한다. 중심지역에서 발생 되는 예술이 대중과 사회에 초점이 되어있다면 타 지역에서의 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체험과 경험이 중심이 되어 ‘재난’이라는 토론을 통해 각자가 느끼는 재난을 이야기하고 제시한다.
나는 거주하고 있는 지역 내에 과거 애환이 깃든 곳으로 시각을 돌려본다. 춘천 우두동 50호 마을은 격자형 골목을 따라 50채의 집이 들어서 ‘50호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6·25 전쟁 이후인 1960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지은 구호 주택이다. 현재 미군 부대는 사라졌고, 우두동 50호 마을에는 237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다. 지원정책에 따라 도시재생과 생활예술로 다방면의 변화를 가져온 이 마을의 환경조성을 직접 체감해보고 과거를 통해 오늘날 재난이 닥쳐왔을 때, 과거의 이주와 현대 이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연결되어왔는지 구조와 터를 비교해보며 기록한다.
1번째 방문기 (춘천50호 마을 2022.4.28) 지난 춘천으로 이주하면서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 낙후된, 오래된 동네를 찾게 되었다. 전세로 내놓은 집을 보았던 그때가 오늘 문뜩 작업으로 생각났다. 내부구조를 둘러보며 주인집과 마당이 하나로 서로 붙어 있었다. 벽 하나로 나뉘는 공간과 천장은 주저앉을 듯 낮아, 햇빛이 들어 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그곳, 보온력을 높이기 위해 비닐을 이중으로 설치한 것을 보며. 한참 어린시절 생각에 잠겼다. 나무 마루 바닥에 비닐로 벽을 감 쌓아 부엉이 박제가 놓여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던 공간이 떠오른다. 손 닿아 고치며 살던 이곳은 나에게 낯설면서 사람들의 애정이 깊어 보인 마을공간으로 부터 관심이 생겼다.
2번째 방문기 (춘천50호 마을 2023.3.11) 흙 골목길 위로 기초공사가 한참 중이었다. 벽돌이 흩어져 짝을 잃은 길은 어수선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던 골목길에 문마다 배수설비 안내문이 붙어있는 그것을 보아 집마다 공동생활 오·폐수 환경개선을 하는 듯했고, 가스통이 개인 집마다 사용하는 것을 보아 고층빌딩 아래 도시가스 연결이 안 된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집 사이로 들리는 티비 소리와 사람 대화소리가 covid-19 질병이 끝난 뒤 정겹게 느껴졌다.
3번째 방문기 (춘천50호 마을 2023.3.27) 집마다 사물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사물에는 과거, 현재가 공존한다. 요즘 물건은 쉽게 사용하고 버리고, 대량 생산되는 과도기에서 재난위기 의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수히 쌓여가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다르게 가치를 생각해본다.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 시간을 발견했을 때 발해진 색, 생김새, 모양, 변형된 것들로부터 삶이 보이고 나는 그런 사물에서 시간·기억을 발견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살 곳을 찾아 정착한 이 작은 마을에서 벽돌로 하나하나 오래 일궈 내어온 집이다. 한때는 나와 가족,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벽돌의 아픔이 허물어진다.
4번째 방문기 (춘천50호 마을 2023.5.09) 날씨, 계절에 따라 마을에 변화를 느꼈다. 차가웠던 작은 골목길 위로 꽃들이 보였다. 주민들은 텃밭과 쉼터에서 모여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빈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 앞에 피어있는 민들레꽃을 보면 짐작이 되었다. 또는 화분 위로 무성하게 핀 풀과 담벼락 넘어 사람 손이 닿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풀이 빈 그곳을 메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 사람들이 사는 담벼락 위를 볼 때면 가지런히 놓은 작은 화분에서 '집'이 보인다. 버려진 빈집 틈 사이, 인도 변에 핀 잡초 또한 내가 바라보는 집이다.
2. 강릉의 주민들 삶으로 시각 돌리기 - 별거 아닌 일상 가까이 있는
1번째 방문기 (강릉동부시장 2023.5.12) 1977년 강릉시 옥천동과 교동에 걸쳐 개설되어 서부시장과 더불어 강릉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 중 하나이다. 1.2층에는 잡화, 청과, 식품, 식당 등이 판매점들이 있고 3~4층에는 상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위치하며 강릉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기도 하다. 현재 재건축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 거주민의 인터뷰에서 100가구/ 60상가 만 남아있다고 한다. 점차 젊은 층은 빠져나가고 대부분 주민이 고령이라고 한다. 지원정책에 따라 도시재생을 꿈꾸지만 주민의 생각에서 가능성 없다고 말한다. 나의 시각으로 돌아와 동부시장 건물 주변으로 품고 있는 발굴된 유적들의 터와 오늘날 시간이 고스란히 이겨내온 건물 내에는 서민들에게 사는 물건들이 공간을 채워주고 있다. 미로계단 아래로 널브러진 빨랫줄과 옥상 얼룩진 우레탄 페인트와 화분으로 조성된 작은 텃밭, 널빤지에 건조하는 부산물, 전 세대가 함께 쓰고 있는 우편함, 개방된 문들은 어딘가 주민들의 생활이 이 건물 속에 배어나 보였다. 2번째 방문기 (강릉동부시장 2023.5.15) 셔터 내린 빈 상가를 둘러보며 몇몇 운영 중인 식당을 들어갔다. 주상복합에 사시는 어르신들께서 잔치하기 위해 예약해놓은 식당에 나는 혼자 국밥을 들었다. 좀 전에 상가에서 보았던 모임 이름이 분명했다. 빈 건물들 사이에서 노인 쉼터로 운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모두가 아는 관계로 통했다. 지난 방문 때와 동일하게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과 몇 안 되는 채소 상가에 티비를 보시는 할머니 그리고 베란다 위로 자라고 있는 풀. 노후로 물이 떨어지면서 켜켜이 쌓인 퇴적물을 관찰하면서 여기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과거 현대 이주 삶 속에 연결을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나로 비롯된 기억에서 빈터 안에 채워있는 어떠한 형태든, 이미 죽은 것에서 다시 살리는 것은 의미 없을 수 있겠으나 시대가 사라지고 변형되고 새로이 등장해도 분명한 것은 우리 삶에 개인적 재난으로부터 서로를 잇는 과거에서 관계 회복의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3번째 방문기 (강릉동부시장 2023.7.7.-8) 밤 10:00 찜질방에서 머무는 하루 일정을 가졌다. 이곳은 강릉 중앙 시내이지만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기만 한 이곳 분위기는 미로처럼 어두컴컴했다. 한곳에 어르신이 티비를 보시면서 강냉이를 먹고 계시고 벽에 붙어 자는 사람이 전부였다. 자정이 넘어가자 선풍기 회전하는 소리에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소리에 눈을 뜨고 동부시장으로 향했다. 주민들 삶의 시작 하루를 이 공간 내에 들어오며 상가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셔터도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늘 할 일은 건물의 조각 빈틈을 찾아 종이 죽을 부착시켜 건물의 내/외벽을 채우는 것이다. 이렇게 부착시키고 언제 다시 가져올지는 아직 계획은 없었다. 요즘처럼 비가 오고 다시 해가 뜨면서 예측이 안 되는 날씨에 부착된 종이 덩어리가 그대로 있을지 의문이다. 난관에 쌓인 퇴적물 위에도 부착하고 기둥 아래 깨진 벽돌과 문턱을 넘는 곳 등등 시간으로부터 사라진 틈을 채워 나갔다. 오래된 건물들을 보다 보면 임시적 거주자들이 곳곳에 메꿔진 콜라주들 부착된 것을 볼 때면 ‘우악미’라고 부르고 싶다.
4번째 방문기 (강릉동부시장 2023.8.2.) 공용 주상복합단지 상가를 구경하면서 간판에 써있는 선물 가게에 들어갔다. 90년대 과거의 물건들이 진열된 것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과일 그림이 있는 커피잔과 꽃무늬 버선, 내열유리 냄비와 요즘처럼 볼 수 없는 화려 색 속옷, 옛날 일본수입 물건까지 보였다. 사람이 없는 이 공간에서 자리만 묵묵히 지키고 계시는 할머니는 나를 타지인처럼 보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시고 예전에 아들이 춘천에 강원대 다녔다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살 물건이 없을 것처럼 보이셨는지 이곳에 재개발이 언제 될지 모르지만 새 물건을 들일 수 없는 재정 상황이라는 속사정을 말씀하셨지만, 나에게 이 가게에 모든 것이 추억에 깃든 물건들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양말과 속옷, 커피잔을 사더니 덤으로 주시는 그릇에 마음 까지 얻어갔다.
5번째 작업실에서 (춘천예술촌 2023.8.11) 요즘 강릉과 춘천 도심 속 빈집에서 뜯은 벽지, 버려진 신문지, 잡지, 달력, 포장에서 종이를 수집하고 있다. 새것도 아닌 버려지고 방치된 것으로부터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 작업은 사실 2019년 대만에서 했던 작업이다. 작은 마을 곳곳에 터만 남아있는 빈 건물들과 버려진 지붕 조각들을 가지고 주변 폐지를 수집해 죽으로 으깨서 거푸집 방식을 활용했다. 종이를 건조하는 과정까지 걸쳐 대나무로 만든 구조 위에 설치했던 전시의 연속 선상이다. 재료에서 얻어지는 연약함 또는 쉽게 부서지고 언젠가 사라질 것과 같은 성질에 기온에 따라 변형됨은 옛길을 잃은 변형된 개인의 조각이다.
6번째 작업실에서 (춘천예술촌 2023.8.17) 바람, 추위, 눈 기후처럼 강원도의 단단한 수련과 같은 2020-2023년 땅에 기반으로 작업하면서 체득한 풍경을 이야기한다. 푸석하고도 건조함과 산에 둘러싼 거친 암벽을 비롯한 자연에서 소생하는 신성한 의미에서 이곳이 좋다. 납작하게 바다 오징어를 건조 시키고, 인제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황태덕장과 한겨울 시래기를 말리는 양구 덕장 또는 공용 주상복합단지에 밧줄을 아래 빨래 더미와 유년 시절 겨울이면 지붕 아래 밧줄 달아 돼지고기 한 덩이 매달았던 요즘 찾아볼 수 없는 삶에 베어 들어온 풍경이다.
7번째 작업실에서 (춘천예술촌 2023.8.19) 불볕더위로 작업실은 뜨겁기만 하다. 마른 종이 작업이 어제와 다르게 변형이 왔다. 습한 온도에서 휘거나 갈라지고 최근에 빗 자국에 구멍 흔적이 남고 빗물을 흠뻑 먹으며 건조된 종이는 2차 적으로 자연이 만들어준 작업이 되었다. 변형으로부터 또 다른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기억, 감정, 새로운 사건에서 결코 선형적이고 똑바른 것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변하는 그것으로부터 살아있는 시간을 느낀다. 이러한 시간의 숨결에서 세월을 품은 채 변해버린 공간과 오늘날 그 삶을 이어오고 있는 50호 마을 & 동부시장 상인들의 숨결이 깃든 사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 기울이고 기능이 제거된 변형된 종이로부터 처음 보았던 사물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사라져가고 변형되어가는 오늘날 풍경에서 자신 안에 기억의 사물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