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가로 세로로 그려지는 붓 자국들과 그 위에 긁혀지는 선들은 내가 품에 안은 기억의 형태이다. 떠오르는 형태는 사라지고 눈에 담은 자연의 모습에서 그 기원을 찾아 표현되는 형태들은 갈수록 거칠고 건조한 자국으로 이어진다.
때로 주워 모은 기억들은 미생물 같은 형태로 조각나 분해되고 해체되어 내 안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상실과 소멸, 그 중간쯤에서 나는 그와 비슷한 곳을 발견한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의 불이 켜지고 꺼졌을 일상의 공간. 현재는 켜질 줄 모르고 꺼져있는 비일상의 공간. 나는 그곳에 발길이 닿는다.
굴러다니는 사물에서 사람이 보이고 버려진 사물 안에 소소하게 자라나는 생명이 보인다. 철문 한가운데 핀 꽃에서 멈춘 시간이 보인다. 보이는 시간이 응축된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해 종이 죽으로 본뜬 오브제를 만든다. 종이를 으깨고 불린 죽이 되어 종이가 가진 물성을 짜낸다. 기능이 제거되고 변형된 종이로 다시 처음의 사물을 만든다. 만들어진 사물을 긁고 색을 덧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사물에 담겨있던 물질성을 뽑아내고 본래가 가진 성질, 의미, 기억을 상쇄시킨다. 이어 공기 중에서 동등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변형되고 뒤틀리고 굳어진 오브제는 빈 종이 껍질만이 남게 되어 보는이로 하여금 사물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사물 안의 기억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기억의 사물에 집중하게 한다. 어느새 사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시간 속에서 내 품에는 끌어모으지 않아도 스며드는 기억들이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어 부유하던 기억들은 캔버스 화면에 긁힌 자국들이 늘어날수록 밖으로 흘러나와 내 속에 배어든다. 화면 위 물감들은 껍질이 벗겨지듯 떨어져 나가고 화면의 틈새에서 새살이 돋는다.
뿌리 내리기 위해 땅이 아닌 나에게 물을 준다.
이번 버징가에서 전시된 작품은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였던 ‘볼 수 없는 것’에서 의미가 나타났다가 이곳으로 옮겨 ‘보여져’ 의미가 사라졌다. 흩어지는 형상의 조각들은 과거와 현대의 비슷하지만 다른 이주하는 삶의 변화 차이를 보여준다. 분명한 건, 우리 삶의 개인적 재난은 과거로부터 동일 선상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사라지고 변형되어 새로이 등장하는 시대는 똑같이 반복하는 ‘선상’이다. 사물이 가진 외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시간을 머금어 기억을 구성하는 알갱이로써 바닥에 쌓여간다. 시간 안으로 들어가 기억의 연결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