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라진 터전과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따라간다. 양구에 머무는 동안 마주한 것은 비어 있는 비닐하우스, 뼈대만 남은 구조물, 버려진 사물과 손길이 끊긴 자리들이었다. 찢긴 비닐은 바람에 흔들리고, 흙더미와 폐자재, 철사와 벌통, 개구리 알과 같은 것들은 기능을 잃은 채 쌓이며 또 다른 생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풍경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며 변형되는 과정에 가까웠다. 젖은 흙냄새와 비어있는 껍데기, 살다 떠난 흔적들은 사라짐과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를 드러낸다. 나는 이러한 잔여를 수집하고 지우고, 다시 결합한다. 이전의 이미지를 덮어내는 과정에서 캔버스 위에는 과거의 형상이 아닌 기억의 층위와 감각이 남는다. 작업은 회화와 설치를 오가며 불완전한 신체와 구조를 만든다. 기울어진 다리, 비어있는 얼굴, 결합한 채 뒤틀린 몸체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존재의 형상이다. 그것은 인간일 수도 있고, 서식지를 잃은 동물, 혹은 기능을 잃은 사물일 수도 있다. 양구라는 장소는 군사 경계와 전쟁의 흔적, 수몰된 마을과 보이지 않는 지층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다. 물 아래 가라앉은 터, 자갈 사이에서 발견되는 탄피, 지뢰의 위험 속에 남겨진 길과 빈집들은 이 땅이 지닌 단절된 시간을 드러낸다. 나는 이러한 풍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구조를 감각한다. 겉으로는 평온한 자연 위에 겹겹이 쌓인 역사와 상실의 층위. 이 작업에서 ‘고향’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하는 감각의 형태다. 지워지고, 쌓이고, 무너지는 과정에서 고향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다시 형성된다. 나는 그 잔여의 상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다시 서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라진 자리 이후에도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다.
2021. 4.9 지우며 나를 바라본다. 80만원 중고 첫 차를 구매하고, 아버지 집 베란다에 쌓여있던 캔버스를 이끌고 강원도 양구로 이사를 왔다. 여기 있는 동안 전에 그려왔던 작업물을 다시 꺼내 하나둘씩 지워간다. 지우다 보니 과거의 시간을 돌이켜 보게 한다. 강원도의 지독한 겨울을 보내며, 마음 한편에 뭔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온다.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형적으로 춘천 분지와 닮아있고 댐도 3개가 있으니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기만 하다. 지워가는 캔버스에서 어린 시절 안개 속 등교했던 기억이 붓질과 함께 스치듯 떠오른다.
2021.4.13 뿌리 복층 위는 전기장판에 잠을 자고, 계단 아래 내려올 때면 냉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밖의 냉기보다도 내 마음이 더 시리기만 하다. 이 한적한 곳으로 멀리 도망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노동하는 동물 소비를 위해 죽을 때까지 노동
이제는 돌아갈 곳은 없다.
2021.4.19. 비어있는 비닐하우스 양지마을은 언덕 위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해가 가장 일찍 들어온다. 비닐하우스 뼈대가 잔뜩 있는 밭 사이로 찢어진 비닐은 바람과 함께 너덜거린다. 이곳의 땅은 건조하기만 하다.
2021.5.21. 쌓이고 잊혀 있고 사라지고 집합체의 대상들 이곳에서 나의 눈길 가졌던 것은 방치된 사물들이다. 흙더미, 건초, 각목, 벌통, 알을 늘어트린 개구리 알, 비닐 폐자재, 꼬여있는 철사 등등 손길을 잃은 사물 아래에 이미 기능을 다 해 누적된 시간이 가득 쌓여있었다. 새로이 그 안에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던 것이다. 또는 생명을 다해 죽어가는 것이다. 젖어있는 흙냄새부터 거미줄 또는 생명체가 살다 떠나간 빈 껍데기들이 보인다. 나는 이런 흔적들을 통해 시간으로부터 풍화와 부식되는 현상들에서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균형보다는 쌓음으로써 부서지는 것은 이미지 보이지 않는 외각 숲 안에서 불 수 있었다.
2021.5.31 인간과 고향 고향.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다. 코로나 질병이 유행인 요즘, 자연의 균형은 무너지고 질병이 유입되면서, 정부의 통제 시스템 따르기를 반복한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가운데,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2021.6.20. 나무와 나무 작업실 뒷마당에 조금씩 모아온 수집한 나무 자재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마을 앞에 버린 판넬과 개울, 산에서 수집한 나무의 같은 조건에서 결합하여 만들었다. 한쪽 다리는 삐딱하고 팔은 없으며 얼굴도 없다.
2021.07.24. 시래기 국과 펀치볼 오늘은 일주일 전부터 예매한 B 코스 등산 가기로 한날이다. 동반이 없어서 다른 팀과 함께 묶어서 도착한 뒤 트럭으로 이동하기로 한다고 한다. 차로 40분 북으로 향하면 DMZ 경계선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작은 마을이 존재하는데 마치 화채(Punch) 그릇(Bowl) 같아 이같이 불려 펀치볼이라고 한다. 고대에 화성이 떨어져서 땅이 움푹 들어간 것이라고도 하고 6.25 전쟁 당시 폭탄이 많이 떨어지고 치열한 전투로 들어간 땅 또는 해안면이라고 불렀던 이곳에 깊은 호수가 있었는데 물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 뱀이 많이 나와서 지나가던 스님이 海(바다 해)->亥(돼지해) 이름을 바꾸면 뱀이 안 나온다고 하여 이름이 바뀌었다는데..참 신기한 설화이다. 그런데 멧돼지가 뱀을 잡아먹는 동물이지만 그럴싸했다. 이러한 지역의 유래를 이해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고 나니 흥미로웠다. 등산길을 오르며 안내에 따라 야생화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조금만 넘어가면 북한이라는 곳 또한 가까이 있으면서 먼 이국적인 느낌이다. 생각보다 길 외부에는 지뢰 매설이란 빨간 표지판이 있어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범위에서 감상해야 했다. 등산을 마치고 지역특산물 시래기를 구매했다. 여기서는 무를 다 잘라서 버리고 끝에 줄기잎을 건조해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코로나 시국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공항에서 외국인 출입이 안 되어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외지에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집에 도착하고 저녁 식사를 양은냄비에 시래기와 고기를 넣어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돼지를 잡으면 아버지께서 문밖에 고기를 걸어두어 딱딱하게 얼어버린 돼지 껍질을 잘게 썰어 겨울에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는데 그때의 시간으로부터 생각에 잠기었다.
2021.7.29. 하늘이 닿는 집 작업실 근처 동네에는 빈집들이 있었다. 풀이 자라있는 것을 보면 사람 손이 안 닿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밤에 늘 불이 꺼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차 지방부터 시작되는 인구절벽 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 집은 유독 목발이 많이 있었다. 양구에 지뢰 매설로 또는 홍수로 떠내려오는 지뢰로 인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추측을 하게 했다. 하늘을 보니 지붕 없이 하늘이 뚫려 있어 집이란 기능을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2021.8.30. 소양호 아래 탄피 밤에는 선선하고도 낮은 더운 한여름도 이제는 입추로 들어간다. 강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오랜 선착장을 발견하였고 옛날에 터널이 없었을 때, 양구에서 춘천을 오갔던 물길이다. 지금은 어민들이 쓰고 있는 선창작이 되었다. 이른 아침에 부자지간으로 보였던 어민은 쏘가리를 잡으러 나간다고 한다. 수심이 깊어 곳곳에 섬들과 같이 물 위로 떠 있는 낚시하는 집도 있었다. 강길 아래로 더 내려가면 주택들이 보이는데, 흔히 우리 일상의 풍경이 돼버린 짓다 만 노출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구조 바닥 터 장소도 인상 깊었다. 강 아래로 내려가자 자갈돌 사이로 물이 맞닿으며 출렁이는 물표면은 세상 평화로웠다. 하지만 수십 속에 보였던 탄피를 주우며 역사의 아픔이 아물지 않은 채 이 땅에 일어난 사건을 상상하게 한다. 얼마 전에 다녀온 파라호 호수에 많은 인민군이 죽었다고 하는데, 수심 아래 감춰진 아픔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요즘 수집하고 있는 빈 껍질에 의미를 찾다 보면 캔버스에 개미굴과 같은 구조로 사물의 이야기를 넣어 보는 것을 상상하게 했다.
2021.9.04. 옛 집터 풍경의 뼈 개인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춘천 고향에 대해 이미지 자료를 찾으러 갔다. 분교가 되어버린 초등학교부터 터만 남아있는 옛집, 다른 집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집, 장례를 치르고 상여를 보관하던 집, 길만 남아있는 옛길, 누군가 새로 사는 집 그리고 양로원으로 바뀐 집과 그 옆에 할아버지 산소. 이 작은 동네에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개울길을 따라 기억을 떠오르며 가족과 함께 살았던 나의 성장 시기를 둘러보니 이야기가 많았다. 아버지를 쫓아 사냥했던 기억, 창고에 쌓여있던 덫, 외부 손님으로 북적이던 여름날, 석양 하늘 위로 가득했던 박쥐, 항아리 안에 숨죽여 똬리를 틀고 있는 뱀들, 알 수 없는 금광로, 산속 미로길 염소농장, 돌 아래 붙어있는 다슬기와 가재, 암벽에 놓여있는 벌통 등등…. 떠올랐다. 부모님의 부재로 돌보지 못한 집 메말라버린 닭장, 풀로 가득했던 텃밭, 곰팡이로 가득했던 밥통. 8살 이후 변화에서 집은 나에게 빈터와 같이 시간을 메꿀 수 없는 가장자리 깊이 차지하는 듯하다.
2021.10.12.-17. 풍경의 뼈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가 지원금으로 춘천 kt&g 상상마당에서 개인전을 했다. 대학원 다니던 시기 2017년 공개 못한 작품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작업을 많이 했으나 근본은 나를 보여준다는 것이 미숙하게만 느껴지고 미루다가 하게 된 것이다. 짧은 기간이 다소 아쉽지만 고향에서 처음 전시해보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어린시절 사생대회를 늘 나갔던 이 공원공간에서 어느새 전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번 전시는 춘천에 오고가며 오늘날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터전의 주제를 갖고 지역 내의 풍경을 그렸다. 모두가 아는 지역의 모습이지만 내 관점에서 보았던 고향은 오랜 시간을 비롯한 버려지고 썩어가는 번영했던 과거 건물의 상징에서 오는 상실, 소외, 정조, 여운, 가유 상태의 풍경을 내포하려했다.
2021.10.28. 지역의 예술 작업실 내에 오픈스튜디오 날이다. 외진 곳까지 누가 올지 기대와 의문에서 창문, 입구 문을 크게 열었다. 맡은 편 작업실을 쓰고 있는 고우리 작가와 차 한잔하며 사람 없는 한적함 속에 작은 위로로 덕담을 건넸다. 시설 내에 홍보가 부족한 탓일까 또는 주민의 미술 이해도 관심 밖의 문제일까 아니면 작가와 주민의 만남에서 교류 또는 눈높이가 부족한 탓일까? 지방 내에 문화예술의 관심이 취약한 점을 알 수 있다. 예술이 지역에서 활성화할 방법은 무엇일까.지역 내에 인구수만큼 중요성은 없는 듯하다. 지역 내에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전시도 방법이겠지만 지방에서 미술로 큰 호응을 얻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역 미술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지만, 생활 속에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감상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사는 주변의 모든 것 자체에서 인간이 만들어 온전한 것에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원초적인 것에서 지역이 가진 특유의 것을 살려야 한다….
2021.11.12. 안개길 아침 7:30 안개가 수북이 땅에 가라앉은 파라호를 걸으며 갈대밭 길을 걸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끝 지평선은 사라지고 갈대숲에서 수직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미적 발견한 수직선을 화폭에 옮겨오고 싶었다. 쌓아있는 수직선 사이에 미세한 공간의 뒷면을 본다..
2021.11.17. 문바위를 찾아서 양구 지역의 楊九의 地名 책자에는 지형의 설화, 민화, 전설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 땅에 축적되온 터전의 이야기로 그 지형을 찾아 확인했을 때, 그 공간에서 시간을 느껴졌다. 사명산에 있는 문 바위는 바람과 구름이 통하는 길이라 하여 이곳은 심신을 닦는 수도자들이 심심찮게 찾아드는 곳이라고 한다. 책을 들고 산 오르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스님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옛날 터가 위치한 곳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늘어놓으셨다. 강원대 역사정책 연구보고서를 건네시며 옛 절터 상황에 관해 설명하셨다. 산을 오르며 옛 절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에 축대로 구성되어 옛 마을이 조성된 것을 찾아볼 수 있었으나 토사가 흘러내리고 나무가 자라고 풀이 나면서 흔적 정도만 예측할 수 있었다. 길이 험하여 나무를 잡고 정상까지 올랐을 때 책에서 봤던 큰 바위 큼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살이나 무당들이 기도할 만큼 신성한 곳이라고도 하고 치성을 지낸다고 하니 새롭다. 사람 발길 없는 이 바위를 오르니 주변 경관이 아름답기만 했다. 전설에 나오는 책을 보며 상상을 걸으니 환멸 속에서 벗어난 듯 마음이 가볍다.
옛 민가의 축대만이 남아 있는 마을의 빈터, 그리고 절터의 흔적, 한때 치성을 드리던 신성한 바위와 전설은 오늘날 마을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그곳엔 무너진 집합체의 잔재와 토사가 흘러내린 땅만이 남았고, 나뭇가지 사이로는 바람만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2021.11.21. 평화의댐 화천과 양구 경계에 있는 댐으로 어떠한 에너지 기능을 하는 댐은 아니라고 한다. 해발 270m로 하류를 떡하니 막고 있는 것이 상징적인 기념물에 불과했다. 설립은 1986 국민의 성금을 모아 북한에 있는 금강산 댐 위협의 공포감 조정과 같은 괴담을 통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관광의 일부분 목적으로 보이지만 하얀 콘크리트가 독재자의 권위와 폭력처럼 와 닿았다. 언젠가 남북 평화가 온다면 막혀있던 물이 남쪽으로 자연스레 흐름을 생각해서 물길을 화폭에 그려본다.
2021.12.28. 수몰된 마을을 찾아서 양구군 북면의 지역으로 화천군과 사이에 있는 상무룡리 마을 안에 수몰된 곳이 있다. 평화의 댐 건설로 파로호를 퇴수시키면서 이 안에는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고 선사시대 각종 유적이 1987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1943년 전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화천댐을 축조하면서 일본 사람들은 유적이나 생태계 그밖에 자연환경을 무시한 채 댐을 건설하므로 더 많은 선사유물과 유적이 수상되어 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길을 건너기 위해 마을 내에 학생들이 익사하기도 했다는 기사도 있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터의 이야기를 물길을 따라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