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 없는 집은 내게 '빈터'와도 같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나의 뿌리와 주거지를 찾는다. –2017 작업노트-
내 고향 <춘천>을 배경으로 한 이번 작업은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오늘날의 모습들을 통해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흙과 땅 그리고 집이 존재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는 <빈터>로 남아있다.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집, 풍경, 가족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충돌로 사라지거나 변형되어 방치되었다. 나는 이 서글픈 상실을 캔버스 위에 뼈대를 훤히 드러낸 건물로 상징했다. 이때 배경에 깔린 짙은 무채색의 분위기는 어찌 보면 익숙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유령과 같이 실체가 없는 기억의 잔상 또는 허구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 유년의 땅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러나 무자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해 생태변화와 이주 현상이 초래되었고, 과거의 모습을 잃은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어린시절의 나를 기억해낼 수 없다. 이러한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터로부터 소외되며 그 언저리를 불안한 상태로 부유하고 있다. 작품들은 유년의 땅에서 점점 멀어져가며 혼재되어만 가는 정체성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자 하는 나의 태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향수에 젖은 기억의 실재와 환상 그리고 궁극엔 이 모든 걸 상실하는 것에 대한 유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사라지고 변형되고 새로이 등장하며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순리>를 캔버스 위에 안료를 문지르고 본연의 성질이 드러나도록 덧칠하고 긁은 과정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연과 인간 본질의 치환을 시도했다. 이러한 과정으로라도 어떻게든 우리가 잃어버린 행복의 원형을 되찾고 싶었다.